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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회복탄력성(소장쌤 읽어봐주세요/성빈이가)
관리자 조회수:5397 121.151.160.203
2018-10-01 09:00:00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부분을 읽으니까 소장님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나서 직접 타이핑쳐서 보내드립니다. 꼭 한번 시간 나실 때 읽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회복탄력성 中  

p46~p56

에미 워너의 발견

카우아이 섬 연구의 자료 분석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에미 워너는 심리학자였다. 그는 이 방대한 자료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무언가 분명 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에미워너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특정한 어려움이 훗날 어떤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찾아내려 애썼다. 예컨대, 엄마가 알코올 중독자이면 자녀 역시 알코올 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 10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범죄의 길로 빠질 가능성이 더 높은가?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아이는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가? 엄마의 모유를 먹지 못한 아이는 어떤 정신적 문제를 보이는가? 조부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편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회적응성에 있어서 어떠한 편차를 보이는가 등등.

 만약 이런 인과관계를 속속들이 다 밝혀낼 수 있다면, 아이들의 출생과 양육 환경만 보고도 사회적응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을 갖고 에미 워너는 전체 연구 대상 중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추려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1955년에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아이들 대부분이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단정할 수 있을 만큼 섬의 사회 경제적 여건이 열악했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특히 더 극단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놓였던 201명을 추려내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녔다. 모두 극빈층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정불화가 극히 심하거나 부모는 별거 혹은 이혼 상태였다. 엄마나 아빠가 혹은 양쪽 모두가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고위험군'이라 불리운 이201명이 성장 과정에 대한 자료를 분석해 보니 실제로 다른 집단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학교 생활 부적응과 학습장애를 보였고 학교와 집에서 여러 가지 갈등을 일으켰다. 이들이 커서 18세가 되었을 때 상당수가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소년원에 들락거리거나, 이미 여러 차례 범죄 기록을 갖고 있거나, 정신질환을 앓거나 미혼모가 되어 있었다. 확실히 이들은 나머지 아이들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로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에메 워너는 끝내 알고 싶었던 것을 밝혀낼 수는 없었다. 이 아이들이 보이는 문제행동들과 이 아이들이 겪었던 시련사이에 구체적인 대응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런 문제를 일으킨 것은 3분의 2뿐이넜다. 물론 높은 비율이었지만 이 말은 나머지 3분의 1은 별 문재를 일으키니 않았다는 애기가 된다. 이것은 어미 워너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였다. 고워험군에 속한 아이들 중에서 3분에 1 가량에 해당하는 72명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니, 이건 분명 무엇인가 질못된 것이었다. 자료 조사가 철저하지 못 했던 것일까? 이 고위험군 아이들이 18세가 되었을 무렵의 인터뷰 결과를 정리하던 에미 워너 교수는 마이클이라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유심해 들여다보게 된다.

 마이클은 그 섬 어느 누구보다도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마이클이 태어날 당시 그의 어머니는 16세의 애된 일본계 소녀였고 아버지는 19세의 필리핀 소년이었다. 10대 소년 소녀였던 마이클의 부모는 마이클이 태어나기 3개월 전에야 겨우 결혼하게 된다. 물론 양쪽집안에서 엇한 반대가 있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여 마이클을 낳게 된다.

 마이클은 태어날 당시 2kg밖에 안 되는 미숙아였고 태어나자마자 3주동안 시설도 열악한 군대 병원의 인큐베이터에서 보내야만 했다. 마이클이 엄마와 함께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한국 전쟁 말기에 징집되었던 마이클의 아버지는 2년이나 더 복무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마이클이 열 살 되었을 때, 그에게는 동생이 셋이나 생겼다. 하지만 그 무렵 그의 부모는 결국 이혼하게 된다. 20대 중반이 된 그의 엄마가 마이클과 동생들을 모두 버리고 섬을 떠나버린 것이다. 마이클의 엄마는 그 후 다시는 섬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마이클의 아빠와 할아버지는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이쯤 되면 마이클은 약물 중독자나 소년범 아니면 적어도 사회부적응자가 되었어야한다. 그것이 상식에 맞는 것 아닌가? 그래야만 이 거대한 연구의 기봉 가설이 유지될 수 있다. 어미 워너 교수의 눈에 마이클은 이 거대한 연구의 기반이 된 상식애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마이클은 어미 워너의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제 막 18세를 넘긴 마이클은 놀라울 정도로 밝고 명량한 매력적인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성적은 초등학교 이래 늘 상위권이었고, 독서력도 늘 자기 학년의 수준을 넘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의 성취도는 상당했다. SAT(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 점수는 전미국 상위 10% 안에 들었으며 학교성적은 대부분 A였고 전교 석차 역시 10위 안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교우관계도 원만해서 동아리 대표와 학생회장으로도 선출되었다. 마이클은 미국 본토의 유명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한 상태였다. 그는 장차 교사가 되리라는 구체적인 진로 계획도 갖고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자신이 노력한 결과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성격도 긍정적이며, 자율적이고, 도덕적이었다. 마이클은 행복해 보였다. 마이클은 세사의 모든 부모와 학교 교육이 만들어내길 원하는 이상적인 청년이었다. 에미 워너는 마이클의 자료를 다시 점검해보았으나 자료조사는 철저했다. 다만 마니클은 상식에 반하는 경우였을 뿐이다. 마이클은 마치 그에게 닥친 모든 역경을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마이클은 에미 워너로 하여금 이 연구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보게 만들었다.

 에미 워너 교수는 마이클의 모든 기록과 인터뷰들을 읽고 또 읽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에미 워너 교수는 당연히 마이클의 경우가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사례는 마이클뿐만이 아니었다. 마이클과 다른 아이들의 차이점을 찾던 에미 워너는 차이점을 발견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이클과 비슷한 아이들을 하나 둘 더 발견하게 되었다.

 하와이계인 케이 역시 10대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났다. 엄마는 임신 때문에 학교를 떠나야 했고, 역시 10대 소년이었던 아빠는 직장도 없었다. 이 젊은 커플은 10대 초기부터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싶어했다. 물론 양쪽의 집안에서는 격렬히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케이의 넘마는 가정법원에 의해 호놀룰루의 구세군 가정으로 보내져서 겨우 케이를 낳을 수 있었다. 케이의 엄마는 케이의 양육을 포기하고 입양보내려 했지만, 그것도 실패하여 결국 그냥 키우기로 했다.

 케이의 엄마 아빠는 케이가 6개월이 되었을 때 마침내 결혼했고, 5년 간격으로 두 동생도 낳았다. 어린 10대들의 결혼이 보통 그렇듯이 케이의 엄마와 아빠의 결혼 생활도 평탄하지 않았다. 늘 다투던 둘은 결국 별거하기에 이르렀다. 케이는 아빠와 살았고, 엄마가 종종 들렀다. 케이는 부모가 여전히 서로를 좋아하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산다고 믿으며 자랐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음애도 불구하고, 18세가 되었을 때 케이는 상당히 성숙하며 자존감이 높은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통찰력과 가치관, 목표가 있으며 갈등의 감정은 잘 표현하지 않았다. 사회화, 자기통제, 좋은 인상, 공동체정신, 여성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진지하고 근면하며 차분했다. 참을성과 기본적인 상식, 판단력, 자기확신이 있고, 남들을 존중하고 받아 들일 줄도 알았다. 어른이 되면서 그는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다. 나는 일할 재능도 있으며 결혼해서 행복하게살고 싶다. 그리고 내 성격이 꽤 좋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모든 지표에서 케이는 아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고 유능하고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마이클이나 케이뿐만이 아니었다. 메리 역시 매우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필리핀계 백인인 메리의 엄마는 여러 번 유산한 끝에 겨우 메리를 임신했다. 임신 중에는 과체중을 비롯한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다. 메레를 낳을 대 심한 가진통으로 세번이나 입원 했었고,  20시간 이상이나 산고를 격은 끝에 겨우 메리를 낳았다. 난산이었다.

 메리의 엄마는 자주 실직 상태에 빠졌다. 뿐만 아니라 메리가 다섯 살에서 열 살이 되는 동안 메리엄마는 큰 병에 여러 번에 걸려 수술과 입원을 반복했다. 메리의 엄마는 신경질적이었고 두 아이 -메리가 20개월 되었을 때 여동생이 태어났다.-에게 늘 짜증을 냈으며 자신이 아이들을 해칠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다섯 살부터 열 살에 이르기까지 메리는 여러 차례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았다. 그의 엄마는 여러 차례 정신병원에 입원 할 정도로 심한 신경과민 환자였다.

 그러나 메리의 기록 어디에서도 불우한 환경이 메리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춘기 시절 메리는 학교에서 늘 평균 또는 그 이상의 수행 능력을 보였으며 심리검사에서도 사회성, 지배, 자기수용성, 좋은 인상 부문에서 평균이상의 점수를 얻었다. 메리는 외향적이고, 지기 주관이 뚜렸하며, 지기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 배려하며 협조적이었다. 엄마와 갈등을 겪디 않느냐는 질문에 메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싸움하는 것을 싫어해요. 엄마가 불평을 늘어놓으며 집안을 돌아다니면 결국 나는 침지 못하고 조용히 일어나서 집을 나서지요. 그 뿐이에요. 엄마는 또 화가 풀리니까요. 그 후에 딥애 들어가면 돼요. 저는 자식이 부모와 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항상 대화로 원만히 풀어야 한다고 믿어요."

 메리는 강한 자긍심과 긍정성을 보이는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인터뷰를 통해 그는 자기자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랑하는 것 같지만, 저는 성격이 좋은 편이에요. 저를 아는 모든 삶들이 저를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요. 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안다고 믿지만, 아직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메리가 이렇게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젊은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마이클, 케이, 메리 뿐만이 아니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고위험군 201명 중에서 무려72명이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고위험군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적 조건 때문에 사회적 부적응을 보일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아이들이었다. 이들 중 무려 72명이 마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한 것이다. 기족이나 친구들과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었으며 긍정적이었고, 장래가 촉망되는 그야말로 정상적인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중 단 한 명도 심각한 학습장애나 행동장애 혹은 사회부적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어떠한 어려움이나 역경도 감히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고위험군의 무려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던 것이다.

 이것은 에미 워너 교수에게 풀기 힘든 커다란 의문을 제기했다. 어려운 환경 숙에도 마이클이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었일까? 도대체 무엇이 케이나 메리로 하여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 이상으로 사회적응을 잘하게 만들어준 것일까? 그 당시 심리학이나 교육학은 이 질문에 대해 속 시원히 답할 수 없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위대한 발명은 항상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다. 워너 교수는 별 볼일 없이 잊혀져갈 뻔한 연구에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엄청난 발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미 워너의 72명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어떤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힘의 원동력이 되는 이 속성을 에미 워너는 '회복탄력성'이라 불렀다. 에미 워너는 무엇이 아이들을 사회부적응자로 만드냐는 질문을 버렸다. 대신 무엇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유지시켜주느냐는 질문을 전디기 시작했다. 카우아이 섬 연구를 시작하고 나서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 회복탄력성애 대한 연구로 탈바꿈하게 된것이다.

 그 후 워너 교수는 카우아이 섬 연구를 통해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확립했다. 워너 교수가 40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회복탄력성의 핵심적인 요인은 결국 인간관계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엄마였든 아빠였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이든 간에, 그 아이가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았었던 것이다.

 톨스토이 말대로, 사람은 결국 사랑은 먹고 산다는 것이 카우아이 섬 연구의 결론이다. 사랑 없이 아이는 강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사랑은 먹고 자라야 아이는 험한 세상을 헤쳐 나아갈 힘을 얻는 법이다. 이러한 사랑을 바탕으로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아존중심을 길러가며 나아가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의 근본임을 카우아이 섬 연구는 알려준 것이다.

 

 에미 워너 교수는 네브라스카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네소타 대학을 거쳐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에 정착한 이래 40년간 카우아이 섬 연구를 주도해왔다. 에미 워너 교수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 자신이 마치 카우아이 섬의 아이들처럼 지독한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히틀러 치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무려 5년이란 세월을 지하 대피소에서 폭격을 피하면서 살았다. 그의 어린시절의 기억은 배고픔과 고통 뿐이었다. 사춘기가 될 때까지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근근히 먹고 살았다. 나치의 핍박과 2차 대전을 격으면서 오빠를 비롯해서 그의 가족의 모든 남자가 다 죽었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게 된 에미 워너는  "자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나가야하나?" 하고 스스로 한탄했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겨험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를 그렇게 낙천적으로 만들었냐는 질문에 워너 교수는 가족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엄마 쪽이 유머감각을 지닌 쾌활한 사람들이었다. 어머니의 무덤에 찾아갈 때마다, 워너 교수는 그 앞에 앉아서 이렇게 애기했다고 한다. "엄마, 유머 감각을 주셔서 감사해요. 그거 살아가는 데 엄청 도움되거든요!" 그리고 그는 늘 따뜻하고 인자했던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좋은기억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 시절 이래 노년이 될 때까지 친분을 유지해온 절친한 친구들도 있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결국 그의 인생의 '완충 보호장치'인 셈이며 회복탄력성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40년에 걸친 카우아이 섬 연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람마다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이 바로 회복 탄력성이다. 그러나 사람마다의 회복탄력성에는 차이가 있다. 어린 시절 부모나 가족들로부터 헌신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자란 사람은 회복탄력성이 높다.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평생 부모와 가정 환경 탓만 하며 살아야한다. 그러나 다행해도 그렇지 않다. 이후 이루어진 많은 연구를 통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스스로의 노력과 훈련에 의해서 회복탄력성이 얼마든지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혀졌다. 에미 워너의 말을 들어보자.

 "지독한 가난, 부모의 부재, 폭력적인 이웃과 우범 지대에서의 성장등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이 꿋꿋이 바르게 성장하고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놀라운 일 입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회복탄력성이 있는 아이들만 그러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회복탄력성 자체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다만 회복탄력성의 요소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파악된 만큼 회복탄성력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은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역경과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다양한 종류의 크고 작은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회복탄성력은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카우아이 섬 연구 이래, 최근 긍정심리학의 연구를 주도하는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연구팀을 중심으로 청소년과 성인의 회복탄성력애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이제 그동안 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회복탄력성을 구성하는 요인들에 대해 살펴보고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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