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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 꽃동네를 갔다 와서....
관리자 조회수:332 121.180.142.179
2007-08-10 20:18:00
나는 8월8일부터 2박3일동안 충북 음성꽃동네에 봉사를 하러 갔다 왔다.
처음에 가서 영상실에 가서 꽃동네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꽃동네는 꾀 넓었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사람이 사는곳, 장애인이 사는곳, 노인들이 사는곳, 아이들이 사는 많은 집이 있었다.
그리고 수녀님의 강의를 들었다. 수녀님이 말을할때 가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수녀님이 말하는것을 들으면 거의 맞다는 생각이 들고 꽃동네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음성꽃동네는 처음 최기동 할아버지께서 40년이 넘게 구걸을 하면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을 오웅진 신부님이 보고 1300원으로 처음 꽃동네라는 집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18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무려 1000명이 넘게 산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조끼리 모여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뽑고, 조 구호도 만들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영상을 듣고 11시 쯤에 잠을 잤다.
피곤해서 그런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6시에 일어났다.
두번째 날에는 아침에 일찍 또 영상을 듣고,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낙태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낙태하는 동영상에는 이상한 집게 같은것으로 아이의  살을 갈기갈기 찢어서 꺼내는 것이었다. 이상한 막대같은걸 하루정도 엄마의 자궁속에 집어넣으면 자궁입구가 커진다. 그래서 아이를꺼낸다.아이를 꺼내면서 이상한 물같은 것도 터져나왔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엄마는 전신마취를 하지만 아이는 마취도 하지않고 몸을 갈기갈기 찢는다고 했다. 동영상에는 아이의 찢어진 살과 뼈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죽은 아이들을 보여주었다. 정말 크면 이쁠것 같은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낙태시킨것이 아깝다고 생각됬다.
낙태하는 아이의 수는 하루에 4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깐20초에 한명이 낙태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아이를 낙태시킨다고 생각하니 정말 불쌍한 일이다. 이 음성꽃동네에서도 예전에는 아이들이 꽉 찼었는데 지금은 30명 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선택 프로그램을 하였다.나는 두드리라는 프로그램이다. 두드리는 일상생활에서 볼수있는 도구들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나는 식판을 했는데 식판은 경쾌하면서도 쩅쨍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나는 소리가 제일 좋았던것이 옥상에서 볼수있는 물탱크 소리다. 큰북을 치는 소리같았다.
그리고 우리 두드리와 수화는 밤에 하는 캠프파이어때 공연을 한다. 그래서 조금 있다가 6시30분때 다시 연습을 해야한다.
선택 프로그램을 하고  나서 우리는 꽃동네 봉사를 하러 갔다.우리는 요한의 집에 갔다.
요한의 집에는 25살이 넘으신 남자 어른들이 사는 곳이다. 그곳에는 몸이 마비된사람, 앞을 못보는 사람등등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처음들어가니깐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진 아저씨가 나를 잡아 끌어당기며 실내화를 주었다. 그 아저씨는 말을 하지 않으셔서 나는 무슨얘기인지도 모르고 실내화를 신고 따라갔다. 그런데 거기서 엄마라고 불리는 할머니께서 밖에 지금 덥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 그 아저씨가 나보고 왜 실내화를 줬는지 그때되서야 알았다. 다른애들한테도 나가자고 팔을 잡아 당겼다. 힘이 정말 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침실에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들에게 갔다. 나는 한 할아버지에게 가서 안마를 해드렸다. 그 할아버지는 말은 할수있는데 몸을 못움직이신다. 그래서 나한테 물건 있는 위치를 알려주면서 수첩을 꺼내달라고 하셨다. 고개를 들지 못해 내가 할아버지의 눈위로 수첩을 갇다 드려야 했다.
그리고 그 옆 침대에 계시는 할아버지도 안마를 해드렸다. 그 할아버지는 내가 안마하는 동안에 계속 나의 눈을 바라보셨다. 내가 말을 걸면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시거나 계속 나의 눈을 볼때도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앉을 수는 있는데 걸어다니지를 못하신다. 내가 할아버지께 손이 이쁘다고 하시니깐 정말 순수한 아기처럼 웃어 주셨다.
안마하기 힘들어도 할아버지가 내눈을 보고 웃어주시니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천사의 방에 가서 앞이 잘 안보이는 분께 노래를 불러드렸다.
그 아저씨는 정말 즐겁게 박수를 치시면서 웃었다. 그 아저씨는 애국가를 좀 아시는것 같다. 한줄밖에 몰라도 그 음악을 좋아하시는것 같았다. 계속 노래를 불러드리다가 침실에 계시는 할아버지들한테 가서 노래를 불러드렸다. 그리고 드디어 죽을 먹는 시간이 왔다. 우리는 약봉지에 이름을 적고 오빠들이 죽을 먹여 드렸다. 내가 죽을 먹여 드리고 싶었는데 우리는 약봉지에 이름만 적었다. 그리고 40분 뒤에 다시 밥을 나눠 드렸다. 우리도 내려가서 밥을 먹고 와서 꽃동네의 인사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지내면서 약간 정이 들었는데 왠지 허무하게 헤어지는것 같았다.
우리는 봉사를하고 캠프파이어를 했다. 조끼리 모여서 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우리 두드리 공연은 첫번째 공연이었는데 실수없이 잘 했던것 같았다.
오늘 밤도 11시쯤에 잠이 들어서 다음날 아침 6시에 다시 일어났다.
이제 오늘이면 집에 간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어제 봉사를 하면서 만났던 분들이 생각나서 좀더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다른 봉사도 해보고 싶었다.
오늘은 수녀님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퇴소식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꽃동네에 와서 느낀점을 7명 정도 앞에나가서 말을했는데 말을 하는것을 들으니깐 눈물이 나올것같았다. 장애인들이 불쌍하기도 했고, 편견때문에 많이 힘들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픈 할아버지들을 보니깐 포항에 계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픈곳 없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이니깐 웃으면서 집에 돌아갔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꼭 다시 가서 어제 보았던 할아버지들을 찾아 가서 꼭 다시 안마를 해드리고 싶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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